남명이 산수 속에서 찾은 인간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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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명이 산수 속에서 찾은 인간의 길

정우락(경북대 교수)

남명이 지리산을 여행한 것은 1558년(명종 13), 그가 57세 되던 해였다. 여행 기간은 음력 4월 10일부터 25일까지이니 16일간이다. 이홍(金泓), 이공량(李公亮), 이희안(李希顔), 이정(李楨) 등과 함께 등정하여 수많은 경물과 만나게 되는데, 경물을 만나 흥을 느낄 때마다 경중을 따져 기록을 남겨 두었다. 그의 유람코스는, 합천의 뇌룡사를 출발해서, 사천만에서 배를 타고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 하동, 약양, 화개를 거쳐 쌍계사, 청학동, 신응사, 악양현, 정수역, 칠송정, 다회탄을 거쳐 다시 뇌룡사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남명은 이때의 경험을 <유두류록(遊頭流錄)>에 남긴다. 나는 이 글을 읽어 내려가다 4월 24일자에서 책을 덮고 생각에 잠긴다. 그날의 기록은 이러하다.

높은 산과 큰 내를 보면서 소득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한유한(韓惟漢)‧정여창(鄭汝昌)‧조지서(趙之瑞) 등의 세 군자를 높은 산과 큰 내에 견주어 본다면, 십 층의 산봉우리 위에 다시 옥(玉) 하나를 더 얹어 놓은 격이요, 천 이랑 물결 위에 둥그런 달 하나가 비치는 격이라 하겠다. 바다와 산을 거치는 삼백 리 여정 동안에 세 군자의 자취를 하루 사이에 보았다. 산을 보고 물을 보고 사람을 보고 세상을 보니 산중에서 열흘을 지내면서 마음 속에 품었던 좋은 생각이 하룻만에 불쾌한 생각으로 변하고 말았다. 훗날 재상이 된 이가 산수를 구경하러 이 길로 와 본다면 어떻게 마음을 가눌 수 있겠는가? 또한 보니 산 속에는 바위에다 이름을 새겨 둔 것이 많으나 세 군자의 이름은 결코 바위에 새겨져 있지 않았다. 그러나 장차 반드시 그들의 이름이 길이 세상에 퍼져 전해질 것이니, 만고(萬古)의 역사를 바위로 삼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겠는가?

‘높은 산’, ‘큰 내’는 지리산에서 본 산과 내이다. 그런데 이러한 산수 사이에 인간이 있었다. 한유한과 정여창, 그리고 조지서가 바로 그들이다. 한유한은 고려조 사람으로 최충헌이 정권을 마음대로 하자 벼슬을 사양하고 지리산에 은거한 인물이고, 조지서는 연산군이 세자 시절 그에게 성군(聖君)의 길을 가르치다 미움을 사서 갑자사화에 참살당한 인물이다. 그리고 정여창은 조선 도학의 비조로 일컬어졌으며 무오사화로 종성(鍾城)에 유배되었다가 갑자사화를 만나 다시 부관참시 당했던 인물이다. 모두가 지리산에 숨어들어 절개를 지키고자 했던 인물이다.
남명은 지리산 속에서 절개를 지킨 세 군자의 유적을 돌아보며, ‘십 층의 산봉우리 위에 다시 옥 하나를 더 얹은 격이요, 천 이랑 물결 위에 둥그런 달 하나가 비치는 격’이라 했다. 십 층의 산봉우리와 천 이랑의 물은 지리산의 산과 물이며, ‘옥’과 ‘달’은 한유한 등 세 군자를 의미한다. 그리고 남명은 말했다. “산을 보고 물을 보고[看山看水], 인간을 보고 세상을 본다[看人看世]”라고. 산수 속에서 인간과 세상의 길을 찾은 것이다. 그런데, 남명은 당대의 인간과 세상을 보며 갑자기 불쾌한 생각이 들었다. 세 군자처럼 자신의 몸을 정갈하게 하며 지조를 지켜가는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남명이 산수 속에서 찾은 인간의 길! 그것은 허위의식의 반대편에서 빛나는 진실의 길이며 정의의 길이다. 권력자의 치질이나 핥으며 부귀를 누리는 그러한 길이 아니다. 남명은 또 말하지 않았던가! “구구하게 숲 속 잡초더미 사이 원숭이와 이리가 사는 곳의 돌에 이름을 새겨 영원히 썩지 않기를 구하려 하니, 이것은 아득히 날아가 버린 새의 그림자만도 못한 것”이라고! 한유한 등 세 군자의 이름이 지리산 어느 바위에 새겨져 있던가? 그러나 그들의 이름은 만고에 길이 빛난다. 이 때문에 퇴계도 남명의 이 <유두류록>을 읽고, “참으로 천고영웅의 탄식을 자아내고, 귀신을 어둠 속에서 울게 한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인간의 길은 이처럼 진실과 정의 위에서 비로소 향기로운 것이다.
2017-06-10 21: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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